2017년 8월 23일

군대에 있을 무렵, 신상정보카드를 들춰보다가 직업칸에 ‘개발자’라고 적은 선임을 본 적이 있다. 훈련소에서 본인 신상을 말하면서 자기 입으로 직접 개발자라고 말했을 것이다. 당당하게 ‘저는 개발자에요!’라고 했을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컴퓨터 쪽에 일을해요.. 했더니 아 그럼 ‘개발자’니? 라고해서 개발자라고 적힌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그렇게 쓰라고 했으니 신상정보서류에 개발자라고 기록된 것이다. 개발자가 그리 대단한 것이란게 아니라, 그 칸에는 사무직도 있었고 ‘기타’라는 손쉬운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타옆 빈칸에 개. 발. 자. 라고 한자 한자 써냈다는 것이 사실 무지 흥미로웠다.

이번 방학에 큰 기업의 인턴과 비교적 작은 기업의 data ops 업무를 제의 받았다. 결과적으로는 작은 기업에 가기로 선택했는데, 나는 늑대가 되어야지 목줄 단 개로 살지 않을거야… 라는 큰 대의는 아니고, 적어도 흥미로운 서비스를 위해 개발한다던지, 또 좀 더 자유롭게 내 생각이나 뜻을 공감해주는 곳에 가고 싶었다. 큰 기업에 가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이야기도 꽤 들었지만 인정을 바라기 전에 내 실력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자아에 잘 맞아 떨어진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개발을 하는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자기 직업이 개발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개발자, 수단으로써 개발을 하는 개발자 말이다. 그 둘 사이에 우열 따위는 당연히 없고 한쪽이 더 코드를 잘 짠다거나 창의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나도 이 직업에 잠깐 있어보며, 내가 만약 10년 정도 이 바닥에 있어도 공적 서류의 직업 칸에 무엇인가를 기재해야할 때 기타 항목에 체크할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만드는 것 그 자체에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계속 모른채로 해나가야지 싶다. 그리고 그런 모든 개발자들의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