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7일

왕십리
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1.
매일 같이 왕십리로 왔다 갔다 하면서 비오는 날이면 김소월의 왕십리가 무척 생각나곤 했다. 한양대역을 지나 다음 역을 도착할 때 들리던 안내 방송 속 그 왕십리. 괜시리 떠오르는 시 속에서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의 여운은 길고 깊었다. 얼마 전에는 ’비 맞아 나른해 벌새가 운다’는 구절에 빠졌다. 가도 가도 비가 오는 왕십리에서 벌새는 나른해서 울고있다. 딱히 불행을 강하게 느끼는 것도 아니며, 또 우는 자신을 이겨내거나 이해하려는 기미 조차 없었다. 왕십리 너머 천안의 실버들도 마찬가지, 비에 촉촉히 젖어 늘어져 있는 모습을 떠올리다 환승역에 도착했다. 몇일이 지나고 다시 저 생각을 곱씹어보니 보통 떠올리던 왕십리의 쉼없이 내리는 비의 모습이 아닌 벌새의 모습에 빠졌던 것은 비를 ‘맞는’다는 사실보다 비를 맞는 것이 습관이 되고 오늘 십리를 가고 내일 십리를 가 왕십리를 벗어난 들 바뀌지 않을 정황이 내일 ‘왕십리’ 할 의지를 막아버린다는 이야기에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2.
최근에 일이 도통 안풀려 사주를 봤다. 평소에 혈액형이나 별자리 같은 전형적인 신파에 치를 떨던 나였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갔다. 내 사주는 사냥꾼 사주라고 한다. 진취적이고 도전하고 발전하고 성과를 내고… 이런거는 다 좋았는데 하나의 맹점은 사냥감을 잡다가 팔다리가 잘린다는 거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전형적인 약한 사주라서, 강직하게 일을 풀어나가기에는 장애물이 많단다.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느냐 반문했다. 나는 궁금해졌다. 사실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해 오만가지가 힘들고 어려운데, 아이폰에 있는 수 많은 설정처럼 스트레스를 비활성화하고 레티나 해상도로 인생을 재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어떻게하면 스트레스를 안받고 살 수 있을지 다시 되물었다.
사주를 보던 아주머니는 두가지 선택지를 줬다. 사주에 나오건데 내년은 더 시끄러울 것이고 이에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면 다시 태어나던가, 내려놓던가. 전자는 해결 방안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으니 어찌 할 수 없는건 내려놓으라고 했다. 난 이런 대답을 원해 비싼 돈을 내고 사주를 보러온게 아니었다. 내려놓으라니, 이런 대답은 고등학교 윤리교과서를 읽어봐도 수도 없이 나온다. 사주에 시간을 낸건 그나마 이래 이래 하면 그나마 괜찮아 질거야 같은 신파 따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럼 내려놓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니 노력하면 된단다. 그 후에는 나에게 달려있다는 말까지 더 했다. 어떻게 하면 내려놓고 싶은 것들을 던져 버릴 수 있을까 고민에 빠져들었다. 또 내려놓고 싶은 것을 떠올려 보았다.
가장 친했던 친구들한테 뒷통수를 거하게 맞았다. 사실 이 일로 귀국 했다는 사실은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는데, 대학 강의에서 들었던 가해자의 ‘피해의식’을 맞닥드린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다들 자신은 올바른 선택을 했으나 내가 이렇게 되버린 이유는 그들 때문이며 자신도 이만큼 망가졌다는 비정상적인 말을 뱉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까지 그들의 주도권을 위해 싸움에 거론 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이렇게 된 이상 서로 안 적 없는 사람이 되어도 모자랄 판에 나는 너를 이만큼 생각하고 있다고, 다시 잘지내 보자며 나에게 카톡이 오거나 주위사람에게 내 안부를 물어봤다는 사실을 들었다. 화가 났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예 세상에 있을만한 일이 아니라는 이유도 없었다. 자기 자신들은 정말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했을 수 도 있고, 그 싸움에 있어서는 내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이 무척 매력적인 카드였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는 힘든 일이 생기면 술부터 찾았다. 소주를 진탕 먹어 다음 날 하루 앓고나면 꽤나 잊혀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쌓이다 보니 그 전 일들에서 배웠던 무언가를 같이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렇게 잊어버린 무언가는 사주 아주머니가 말한 시끄러운 앞날에 너무나 중요할 것 같았다. 스트레스받는 일들에 대처했던 순간이나 생각을 정리해 둔다면 비슷한 일로 스트레스 받는 순간에는 좀 더 수월하게 넘어가지 않을까. 또 쉽게 곁가지를 제거하고 새로운 스트레스에 대처할 에너지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뭔가를 내려놓기에 필요한 것은 체념보다 그 간 일들에 배웠던 것을 이해하고 간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술 같은 싸구려 위안을 찾지 않기로 했다.
간절하게 좋은 마음으로만 술이 마시고 싶은 날이 오기를 바랐다. 더 이상 비를 맞아 나른한 벌새의 모습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