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8일
전역소감문을 대신해서.
#1.
휴가를 나와 제일 첫번째로 하던 일은 사는 곳 주변에 무엇이 바뀌었나 돌아보던 일이었습니다. 공사중인 건물이 꽤높이 지어진 것에 놀라기도 하고, 자주가던 술집이 문닫은 것을 보고 씁쓸해하기도하고, 새로 생긴 음식점에 들어가 맛보는 것도 휴가의 재미이기도 했습니다. 매달매달 바뀌어가는 도시의 풍경과 계절의 색채변화는 국방부의 시계가 흐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 무척 행복하게 이 일을 즐겼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추억이 많은 카페에 다시 갔을때 간판이 바뀌어져있던 것을 봤습니다. 갑자기 제가 무척 미련해 보였습니다. 그 간판이 제게 너도 이제 잊어버려, 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 일은 현재를 즐기는 작업이라기보다 지난 기억을 밟으러 나가는 작업이라는걸 느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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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구와 서울을 왔다갔다 하던 길, 그리고 휴가 나와 돌아다니던 길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원체 미적감각이 없어서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도로변에는 일정한 간격과 높이, 동일한 종의 나무 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멍하니 버스 창 밖을 보다보면, 마치 나무들이 이어폰에서 뿜어내는 리듬처럼, 시각적인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군인이 되고나서 영외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긴 후로, 그 수많은 가로수들이 조금씩은 다르게 생겼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껍질이 듬성듬성 벗겨진 나무들 부터 가지가 길게 자란 나무들, 잎이 티나게 무성한 나무들도 있었습니다. 부대에서 집으로, 집에서 부대로 오가는 수많은 반복 속에서 저는 가로수들의 사소한 특징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가로수들의 '서로 조금씩 다름'이 제게 가르쳐준 것은 군생활에서 느끼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 계획되어있는 비슷한 하루와 유사한 패턴속이었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에 땀내고 혼나고 또 하루종일 웃곤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군생활 하루하루 모두 조금씩 달랐던 것 같습니다. '마땅히 이렇게 흘러가겠거니 싶은' 어떤 고정적인 생각들이 깨져나가면서 어떤 타이밍이냐 어떤 일이냐에 따라 커다란바위가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생각보다 가벼운 민들레 꽃씨같은 일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어찌되었던 제 뇌리에 깊게 박혀있는 일들은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예기치 못한 사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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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구상에서 은하수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호주의 한 오지라고 합니다. 별이 무척 환하게 빛나 은하수 사이사이에 어두운 부분도 선명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호주 원주민들은 이 공백에 ‘에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에뮤는 호주 고유종인 새의 이름입니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별자리에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만드는데, 이 원주민들은 별이 아닌 별의 공백에서 새를 본 것입니다.
이런 인식은 저에게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공백이라고 표현되는 군 생활에 제가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 자체로서 가치있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군 생활이라도, 가장 빛나는 20대의 이 순간을 허망하게 기억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 군생활에서 의미를 얻었던 책 중에 하나는 처용설화입니다. 자신의 부인의 간통 현장을 목격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비록 무속의 영역이지만) 처용의 모습을 보며 제 삶을 관통하는 문제에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입대하기 전, 저는 실체도 명확하지 않은 문제들로 저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처용’처럼 앞으로 닥칠 문제에 웃는다면, 아니 웃을 수 있다면 주변의 추한 것들도 사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은 고결하고 유능한 곳에 있지 않고 누추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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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떤 문제이건 그것이 발생한 차원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아인슈타인의 말로 기억합니다. 어쩌면 군대에 있던 제가 느꼈던 문제와 앞으로 제가 겪게 될 문제들은 해결 불가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문제로 둘러쌓여져있고, 나약한 존재라고 불리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보니 사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연결된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습니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2년동안 많은 사람을 잃었고, 또 많은 사람이 생겼습니다. 제대를 하고 보니 저의 부족함 때문에 잃은 사람들이 더 생각나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기적인 욕심이겠지만, 지금이라도 용서를 빌고싶은 마음입니다. 또한 같은 잘못을 새로 얻은 사람들에게 반복하지 않고 싶습니다. 이 경험이 진정한 조화를 위한 하나의 배움의 과정이기만을 간절히 바라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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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는 서울역에 도착하기전 한강철교를 건넜습니다. 한낮의 한강은 여름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으니 물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한강을 끼고 뻗어나가는 이름모를 도로들과 그 도로를 달리는 형형색색 차들.. 이 모두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설사 제 삶이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의 아름다움과 상관없이 흘러간다해도 지금 이 순간에 제 의식을 묶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찰나와 긴긴 삶이 상관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생각을 지키기엔 충분했습니다. 마치 파도타기처럼,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의 파도를 피하기보다 즐기려합니다. 그 순간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어떤 결과로 돌아오더라도 가치를 부여하는건 제 마음먹기에 달려 있을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