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22일

사람들 사이에 미움을 줄이고 싶었다. 결국 세상에 우리를 아프게 하는 모든 일은 미움에서 시작됐거나 그 일로 하여금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 미움을 줄일 수 있다면 난 더 좋은 세상에 살지 않을까 상상했다. 이 생각을 이어가다보니 이를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듯 각자의 방법으로 미움을 줄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꼭 안 그래도 되는데 이미 졸업한 제자의 고민을 같이 생각해주시는 선생님이나, 새벽시간에도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택시기사님, 끊임없이 용서하고, 소외된 자들 곁에 서있는 종교인을 볼 때, 더 나은 세상이 이런 곳이겠구나 하며 꿈꿔왔다.

내가 이런 친절을 베풀 능력이 부족하다 느꼈을 때 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그 고민에 끝에선 미움이 적어지는 세상이란 사람간의 오해나 문제가 적어지는 세상을 뜻하고 그 오해와 문제가 줄기 위해선 사람들이 더 표현하는 사회란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의 방식대로 다 털어내도 집단으로 모욕당하거나 구타당하지 않아야 현대사회에 절대적 옮음 따위 존재하지 않는, 다면적 문제를 인식할 수 있고, 의견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해결이라는 목적지에 다다름에 첫발을 떼는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난 내 생각을 더 표현했고 내가 옳지 못하다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다. 그리고 집단에 어울리지 않는 의견을 말했다고 해서 모욕 받는 편에 서려 노력했다.
이 생각을 하고 살면서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졌고 몇 번의 사랑도 지나갔다. 이런 시간이 날 훑고 지나가면서 문득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나를 비난한 사람들 대부분은 나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했고, 미움으로 번져나갔다. 연애도 마찬가지였고, 친구관계도 비슷했다. 미움을 줄이기 위해 믿고 노력했던 방식이 미움을 더 키우는 것 같았다. 순간 겁이 났다. 지금까지 내가 잘 못해온 걸까. 혹시나 내말이 누군가에겐 총탄이 되었을 수 있다 생각하니 한마디도 쉽게 내뱉을 수도 없었고 내가 생각했던 것이 합리화 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종교, 문화, 사회윤리에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솔직하게 고민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어찌보면 이 문제마저도 개인의 의견을 나눠야만 합의점을 찾을 수 있기에 서로 이야기해야 풀릴 문제였다. 너무나 다양한 사람의 배경과 생각, 이제까지 쌓아올린 '나'라는 존재가 지닌 의견은 모든 문제에서 다양하게 펼쳐져 나가기에 어떤 의견이든 이견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가 의견에 아프지 않기 위해선 또 끊임없이 의견을 내세워야 되는 것이다.
혹자는 "나의 존엄은 결국 모든 인류의 존엄과 어떻게든 연결 되어있다"고 했다. 나의 자존감은 사적소유물이 아니므로 귀찮다는 이유로, 복잡하다는 이유로, 순간순간 내 존엄을 포기해버리면 다른 사람의 존엄도 비슷하게 위협당하기 때문이다. 존엄을 지키는 방식을 표현이라고 보았을 때, 오히려 내가 맞서야 할 것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있다 생각하고, 모든 사람이 이를 따라야한다는, 개인 혹은 전체가 절대 권력을 가진다는 믿음일지도 모르기에 지금 내가 둥굴게 깎이는건 답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폭력은 항상 말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는 격언을 아직 믿고 싶다. 그래서 수긍할 수 있는 답을 찾을 때까진 여러사람이 지적한 나의 단점을 감수하고도 올해도 이 믿음을 이어나가려 한다. 지나간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철없게도 말이다.